엠타트업 교육생 후기 게시판

[심화컨설팅 18기 후기] 엠군리스트 골목스팜 1회출연자 모르가나장인 입니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작성자
엠타트업
작성일
2022-10-11 20:51
조회
2644




안녕하세요. 엠군리스트 1조 10번 모르가나장인 입니다.

소심한 성격탓에 조용히 구석에 있는데도,

먼저 다가와 주시고 인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자리를 빌어 말씀드리면, 마치 저를 유명인사처럼, 잘하는 사람처럼 대우해주셨지만...

사실 모든 것은 허상이라는게 뽀록났습니다.

18기 3주차까지 진행된 현시점 눈치채셨겠지만,

저의 재능은 0에 가깝습니다.

(11기때도, 18기때도 우수피드백0)

기발한 아이디어, 사고의 깊이, 끈기, 노력, 적극성, 카페접속횟수, 강의반복횟수, 실행력 등등

모든 것이 평균 이하입니다.

(지금 찔리시는분 계시면 제 이야기가 도움되실겁니다)

이렇게 무능한 제가 18년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고,

어떻게 스테디아이템으로 월억을 했었는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제껏 제 마음속 깊은곳에 남아있는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제 결핍에 대해 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쓰려고 합니다.

아직 수익이 없는 조급한 동기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음 합니다.

도움되시면 나중에 저 힘들때 도와주셔야됩니다. 등가교환 약속~~

(사실 이게 CV입니다)



 

“첫번째 이유”










나는 돌 무렵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내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이였는데,

엄마가 여동생을 낳아야될 시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주셨던게 평생을 함께하게 되었다.

토요일이면 엄마집에 놀러가서 하루 자고 올 수 있었다.

엠타트업에는 결핍이 강하신 분들이 많으니, 공감하시는 분도 계실거라 생각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평생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아침이면 티비에서 만화영화를 방송해줬는데,

"쿵" "쿵" 엄마를 때리고 내팽겨치는 소리를 들으며

동생과 나는 눈에 다크서클이 가득한채 뒤를 돌아볼 수 없어 티비에 나오던 만화에 시선을 고정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때 이혼에 성공 하시고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외할머니댁으로 도망을 가셨고,

토요일마다 엄마집에 놀러갔던 행복도 끝이나버렸다.

그래서 유년기~초등학교 졸업까지 엄마나 동생에 대한 기억이 많지않다.

중학교에 입학할 쯔음인가?

엄마,아빠,여동생이 할머니집에 찾아왔다.

두분이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잘해보겠다는 뭐 그런거였겠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중학교 1학년때 엄마는 어렵게 떡볶이집을 시작했다.

떡볶이집 네이밍은 "스마일분식"

글을쓰며 생각해보니, 엄마의 소망을 담은 네이밍이 아니였을까? 싶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역시 우리엄마는 저때도 강했구나.

아무튼 우리 엄마는 음식을 잘만드셔서 분식집도 꽤나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학교 끝나고 분식집에 친구들을 데리고가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는데

아빠가 매우 화가난 상태로 찾아왔다.

튀김이 담긴 유리보관함을 밀쳐서 다 깨버리고, 떡볶이가 담겨있는 떡볶이 판을 발로 짓밟았다.

내 친구들을 다 내보내고 밖에나가더니 셔터를 힘껏 내리닫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폭력이 이어졌다.

이유를 들어보니

엄마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엄마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그래도 14살이나 먹은 중학생이였지만 할수 있는게 없었고 너무나 무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때리는 것도 지쳤는지 소강상태가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셔터밖에 튀김과 깨진유리를 좀 치우고 오라고 하셨고,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아빠 옆을 지나는데 너무 무서워서 눈치를 보며 지나가게 되더라.

갑자기 머리채를 잡혔다. 내가 째려봤단다. (창피했겠지)

그렇게 따귀를 맞는데 무서워서 바지에 오줌을 질질 싸며 맞았다.

이후엔 은행가서 돈 뽑아오라고 엄마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엄마랑 여동생,나는 엉엉 울면서 새마을금고에서 돈을 인출해왔던 기억이 난다.

이때가 나에게 "돈"에 대한 강한 결핍을 만들어준 수많은 기억중 하나이다.

돈을 얼마나 벌고 싶고 이런건 솔직히 감이 안온다.

근데 돈이 없으면 개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걸 몸소 체험했기에

돈 때문에 불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에는 한두가지 얘기만 적었지만, 저런 기억은 셀 수 없이 많다.

내스스로가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되는건,

본능적으로 저런 기억을 내 에너지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아빠같은 삶은 살고싶지 않았으니깐)

가정폭력,

조손가정,

졸업식에 남들은 엄마아빠 오고 사진찍는데, 난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는거?

그딴거에 주눅든적,창피한적 단한번도 없었다.

긍정적이려고 노력했고, 항상 마음속에 분노를 갖고 살았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진짜 끝도 없이 추락하더라,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그래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려는 연습을 하곤했다.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은 못한다.

나는 매사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아직도 부정적인 사람이다.

근데 진짜 힘들거나, 나에게 도움이 안될거라는 판단이 뒤늦게라도 들면

바로 긍정적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결핍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자연스레 생존본능으로 이어진다.

경쟁사가 날 신고하고 망치려들고,

날 저격하고 수익을 뺏으려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는데,

재능같은건 눈꼽만치도 없어 기가막히게 방어한적은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생존본능으로 버티고 버텼다.

결핍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와 생존본능.

이게 재능없는 내가 어떻게든 버티고 수익을 냈던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











(길을 걷다 어떤 손자분이 할머니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걷고 있는 뒷모습)

제 자신에게 슬픔과 결핍을 주는것 같아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사진










그래서 나에게 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엄마와 아빠같은 존재다.

2019년,2020년 두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셨는데,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사무치게 그립다.

내가 마을버스일을 관두고

처음 엠타트업 교육을 들은게 18년8월 11기 교육이였고,

6개월이 지난 19년도 3월정도부터 수익이 좀 났던걸로 기억한다.

돈 많이 벌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좋은 패딩하나 사드리고 제일 비싼 소고기도 먹여드리고 싶었는데,

기다려주시지 않고 떠나신게 너무 가슴아프다.

지난 가족특강 후기에도 적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두분다 중증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특히 할아버지는 대소변도 가리시지 못하셨고,

방 여기저기 흘린 똥을 치운기억이 셀 수없이 많다.

똥을 치우며 되게 신기한 경험을 했었는데,

(아마 내가 부모가 된다면 이런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어렸을적 내가 바지에 똥을싸고 집에 온적이 있는데,

엄~청 웃으시면서 빨래를 해주셨던 기억이난다.

내가 할아버지 똥을 치우면서도 그랬다.

솔직히 "아..냄새.." 라는 말은 나오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더라.

정말 사랑하면 똥도 더럽지 않다는걸 몸소 체험해서 되게 신기했다.

30년간 날 조건없는 사랑으로 돌봐준 할머니,할아버지셨고,

내 머리속 대다수의 기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채워져있다.

내가 만약 죽음을 앞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곧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간다 생각하면 무섭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사무치게 그립고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그렇게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시는 그순간

나는 뭘하고 있었는지 아는가?"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해주셨던 두분이

직감적으로 오늘 돌아가실 것을 느꼈으면서도

애써 그 직감을 외면하며 집으로 돌아와 물길글을 썼다.

본인들 가장 외롭고 무서우셨을 그 순간을

그토록 사랑을 줬던 손자는 함께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심장이 멎고 30분간 심폐소생을 해본 후 사망선고를 하더라.

난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기 전에 병원에 도착했고,

사망선고를 들은건 나혼자였다.

그래서 임종을 지킨거라고 고모와 삼촌,아빠는 얘기한다.

하지만 틀렸다.

애써 본인들 죄책감 좀 덜어볼려고 하시는데,

심장 멈추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건 지킨게아니다.

배제 이게 재능없는 내가 어떻게든 버티고 수익을 냈던 두번째 이유다.

-

우리 조원분들은 아시겠지만,

난 상위노출 트래픽이니 seo니 진짜로 잘 모르고 해본적도 없다.

(물론 자랑이 아니다. 매우 멍청하고 게을렀던거라 반성하고, 이번 18기 교육때 잘배워나가서 더 성장할거다.)

그냥 다 배제했고 물길을 하나라도 더 하는게

재능없는 나에겐 유일한 생존방법이였다.

지금도 이 기억은 나에게 한번씩 죄책감으로 다가와 가슴을 후벼판다.

내가 모든걸 실패하고 경제적자유를 이루지 못하고 직장인으로 돌아간다면

이 기억은 100%의 확률로 확정적인 죄책감으로 돌아와

삶에 대한 의욕도 가져갈만큼 크게 작용할거란 두려움도있다.

그래서 난 이 배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싶다.

내가 틀린선택을 하지 않았고, 할머니할아버지도 이해해주실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배경삼아

생존본능 강화포인트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재능없는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을거라는 확신이기도 하다.

3주차 강의는 나에게 엄청난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관여도를 맞추지 못해 많이 자책하고 있었는데,

3주차 강의를 듣고 관여도, 결핍, 배제, 통찰에 대해 진정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위 들려드린 이야기만 보면

마치 내가 배제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재의 나는 많은 환경이 바뀌었고,

배제와 관여도의 총량을 이해&조절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3주차 강의는

4년전 엠타트업을 처음 만났을 그때처럼

정말 강하게 내 머리와 마음을 관통했다.

엠군님과 코치님들, 매니저님 그리고

끊임없이 자극주시는 1조분들과 18기 전체 동기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단순히 매출이나 수익을 떠나,

나라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강의와 환경, 동기부여, 반성을 느끼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 모든 가르침과 배움을 재능이 없다면 천천히라도 꼭 소화시켜서 발전하고싶다.

-

그리고 혹시나 아직 수익이 나지않아 조급하신 분이 계시다면,

내 이야기를 읽어보시고 힘이 되셨으면 좋겠다.

아직 수익이 없으신 분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어드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내스스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는 11기 분들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정도로 재능없는, 수익없이 수료했던 사람이다.

나는 다시한번 이말을 마음에 새기려한다.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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